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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피에르 보나르의 <창가에서>


편집부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8년 09월 06일
↑↑ 최 영 달
전 경주미협지부장
전 경북창작미술협회장
ⓒ 서라벌신문
이번엔 보나르의 그림을 소개하고자한다. 이 그림은 그의 나이 57세에 그린 것으로 아주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그린 것이다. 창문 안에서 밖의 인물들과 풍경을 그린 것으로 특이한 것은 없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이 특이하여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창문밖엔 세 인물이 있는데 맨 오른쪽에 여인이 모자를 손으로 누르고 있고 그 왼쪽의 둘은 이 여인을 향하여 있다. 이 세 사람 모두 강렬한 빛을 받고 있는데 그 빛이 화면에 일렁이고 있는 듯 보인다. 땅바닥은 분홍바탕에 흰 점들로 표현했으며 정원은 큰 나무들과 풀밭으로 묘사되어있다. 실내는 창문턱이 넓게 그려져 있고 오른쪽엔 열린 창이 왼쪽엔 창문틀과 커텐이 약간 보이는 구도이다. 필자가 중학생일 때(1963-66) 형이 사 온 보나르 화집을 처음 보고 “어떻게 풍경과 사람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보통 화가들은 인물에 더 집중하여 그리고 풍경은 그 배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나르는 풍경과 인물, 정물 등의 소재를 평등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그림에선 인물이 눈에 띄지 않아 한참 찾아봐야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었다. 이 그림에서도 창틀과 사람, 나무를 묘사함에 별 차이를 못 느낀다. 이 그림을 보는 독자께는 어떻게 보이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보나르를 인상파로 보기도 하는데 인상파 화가가 아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에 나가 빛과 구름 아래의 대상들을 보고 그 순간을 포착하여 빠르게 그려나가 완성하지만 보나르는 화실에서 색을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어 칠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몇 년씩 그린 그림이 많다. 그는 혼자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고 아틀리에에서 모든 것을 했다고 한다. <그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도 성급하게 팔레트를 가지러 달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그의 습성 때문이다. 언제나 그는 기억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가령, 지금 사생했다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생각한 다음 사생 당시의 시각의 인상을 기억으로 더듬어 그리기 시작한다>라고 뤼시 쿠스튀리에가 보나르에 대해 기록해 두었다. 이렇듯 그는 인상파 화가들과는 다른 것이다. 보나르는 나비(Nabis.히브리어로 예언자란 뜻)파의 창립멤버이다. 참고로 그들 사이에선 보나르를 <일본 나비>라고 불렀다라고 한다. 이들은 “한 장의 타블로(캔버스에 그린 평면그림)는 말(馬)이라든가 누드라든가의 그 무엇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일정한 질서에 의해서 모여진 색채로 덮힌 평면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었다. 그들은 고갱의 평면적 색 처리와 마티스의 ‘색채해방’, 피카소의 ‘형태해방’에서 나비파를 탄생시켰다.
ⓒ 서라벌신문
이러한 눈으로 봐야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와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 그림을 보자. 여인의 붉은 자켓은 평면적이고, 가운데 아이는 색에서 해방된 듯 보이며, 왼쪽의 여인과 나무들은 원래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있다. 그리고 명암이 있지만 이 명암은 입체감을 주는 효과보다 다양한 색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형태보다 색에 많은 열정을 쏟아 부은 듯 보인다. 여인의 손과 꼬마아이의 손을 보면 형태가 불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화면에 일렁이는 아름다운 색에 눈이 팔려 손의 모양엔 관심이 거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나르를 <색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는 형체를 빌려 그만의 독특한 색을 만들어 입혀나간 것이다.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빛(색)이 충만하여 보는 이가 이 빛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그의 그림엔 빨강, 녹색, 노랑, 파랑, 보라 등이 다양하게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여 나타나는데 이 색들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색의 잔치를 열며, 보는 이로 그 환희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과연 색의 마술사답다.
피에르 보나르는 1867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원한대로 법과 대학을 졸업하여 법학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에 강한 매력을 느껴 대학에 다니면서 아카데미 쥴리앙에서 그림공부를 병행했으며 1888년(21세)엔 에콜 드 보자르에도 나가 화가들과 친교를 가지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평생 화가의 길로 접어들어 80세로 1947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
보나르는 <화면에 물감을 칠해 나갈 때에는 그 행위를 무한히 갱신하고, 감동의 요구에 따라서 형태와 색채의 새로운 결합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렸으며 만년엔 <그림이라는 것은 하나하나가 결합해서 최후에 주제를 만들어 내는 한 방울 한 방울의 연결이다. 그래야만 완성된 후 시선이 어느 곳에 걸리더라도 정지하지 않고 화면을 스쳐 갈 수 있다. . . .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감동되는 것은 화가가 포착해서 그림 속에 실현시켜 보이는 극히 쾌적한 모든 관계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미는 어떤 것에서도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대상에서도 미를 찾아낼 수 있지만, 감동을 주려면 그 아름다움을 캔버스 속에서 형과 색으로 극적인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편집부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8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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