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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리에게 물었더니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5월 23일
↑↑ 권은민
변호사
ⓒ 서라벌신문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행사인데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런 행사에 참석하면 언론매체에서 보던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고, 그들의 연설을 들으면서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기로에 선 세계: 구체적 해법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금년 행사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남북한의 경제협력과 북핵 문제, 블록체인에 대한 강좌가 많았다.
한나절 동안 몇 개 강좌에 참석했다. ‘혁신국가, 이스라엘’ 강연에서는 인구 800만명의 이스라엘이 혁신국가가 된 비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실패해도 문제삼지 않는 ‘후츠파 정신’이란 말을 들었다. 자원이 부족한 이스라엘은 교육에서 해결책을 찾았고, 정부는 혁신기업을 지원했다. ‘에너지 정책과 민주주의 원칙’ 강연에서는 에너지 접근권이 기본권으로 발전하는 세계적인 추세, 전기 공급이 차단되면 사회가 붕괴할 수도 있어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현실, 이런 상황일수록 에너지 정책에 민주주의 원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 원리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민주적 결정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동서독 총리의 대담이었다. ‘독일 통일의 경험과 교훈’이란 제목 하에 동독의 마지막 총리 드 메지에르와 서독 총리 슈뢰더가 대담했다. 진행자가 물었다. “독일과 한국은 똑 같이 분단국가였는데 독일은 통일을 이룬지 30년이 되어 가는 반면에 한국은 아직도 통일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 분의 총리는 공통적으로 독일의 정치상황이 한국과 달랐다고 답변했다. 동독은 소련이 점령했는데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 사건이 있었고, 서독은 그 기회를 잘 포착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그런 세계사적 사건이 없다. 만일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정치 지도자가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햇볕정책은 통일문제에 대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지적하면서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진행자가 “독일에서 통일의 장애물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었다. 서독 총리는 1:1 비율의 화폐 통합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경제적으로는 서독과 동독의 화폐가치가 1:2 정도였지만 그것을 1:1로 통합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었고, 화폐통합의 효과로 서독 기업은 사업기회가 늘었다. 서독 정치인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서독경제가 튼튼했기 때문이다. 서독주민들은 통일과정에서 통일 연대세 등 추가적인 조세부담을 수용했고, 동독주민의 사회보장 부담을 떠안았다. 또한 통일의 전 과정에서 정치지도자들이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일을 지속했다.
동독 총리는 장벽이 무너진 후 동독 주민들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서독 기준으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과거 동독과는 다른 제도에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다. 일부 동독인들은 ‘조국을 잃었다’거나 ‘어머니를 잃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존에 있던 동독 자동차에 대해서도 서독 자동차를 기준으로 한 관리체계를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동독의 인권침해 문제도 논란이 되었다.
토론시간이 다 되어갈 때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한반도 통일이 꼭 필요한가요? 혹시 독일의 경험상 통일 이외에 다른 대안을 권하는가요?” 두 총리의 답변은 같았다. “통일하세요. 통일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장벽이 무너지고 분단된 두 독일이 한 나라가 되자 새로운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과거에 함께 했던 공동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장래 함께 이루어 나갈 공동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통일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장기적으로 보면 통일은 이루어야 할 목표라고, 헌법을 개정할 것인지 주변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그런 모든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통일은 할 만한 일이고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슈뢰더 총리는 한국인 부인과 함께 참석해서 인기가 많았다. 드 메지에르 총리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걸을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두 분 총리의 말씀이 때로는 충돌하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 다른 지향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치했다.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을 먼저 걸었던 원로들의 마지막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하나의 국가가 되면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통일 꼭 하세요. 한국은 통일을 이루어 낼 저력이 있습니다.”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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