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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의 향기와 품격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4월 18일
↑↑ 최 병 섭
수필가
ⓒ 서라벌신문
요즘은 하루하루 다르게 대한민국 화려강산의 꽃들이 새로운 모양과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으며 봄맞이 릴레이(繼走)를 하는 것 같다. 옛 가사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에 “꼿 디고 새 닙 나니, 녹음이 깔렷난대...”라고 읊더니, 지금이 바로 그 때로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연초록 잎들이 꽃샘추위에 겁 없이 피어났던 꽃들로 부터 순식간에 ‘바통’을 넘겨받고 봄 마당의 한가운데로 마구 내닫고 있으니 말이다.
예로부터 봄철에 즐겨왔던 꽃놀이 중에는 ‘화전놀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봄철 삼월 삼짇날이 되면 여성들은 모처럼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꽃지짐을 부쳐먹고 놀았고, 남자들 역시 높은 산에 오르거나(登高) 들판을 거닐면서(踏靑) 봄노래를 부르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 또한 집성촌 남녀 족친(族親)들은 정자나 선산에 모여 새로 돋아난 산나물과 꽃지짐을 만들어 먹으며 화목을 다졌다.
이러한 일반 서민들의 소박한 화전놀이와는 달리, 고관대작들은 남녀시종(男女侍從)을 앞세우고 풍광 좋은 누각에 올라 술 마시며 관기(官妓)들의 노래와 춤을 즐겼고, 양반가 유생들도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소풍(逍風)가서 유유자적 어슬렁거리며 시와 부(賦)를 읊조리며 즐겼고, 돈 많은 난봉꾼들 역시 이때를 놓칠세라 남녀상회(男女相會)하여 난잡한 행각을 일삼아 서민들의 원성이 듣기도 했다.
등산을 하거나 큰 사찰을 찾아 물 좋고 반석 좋은 계곡에 들다보면 크고 작은 바위마다 온통 사람들의 이름이나 시를 새겨놓은 장면을 만날 수 있는데, 과거 한 때 꽃놀이패들이 이곳에 모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시냇물 떠서 먹 갈아 큰 붓으로 일필휘지(一筆揮之)하면 돌쟁이가 이를 받아 바위를 새겼으리라. 정(鉦)을 내리치는 망치 소리와 희희낙락하는 상춘객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난잡한 장면을 상상하면별로 유쾌하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시대에는 이러한 일들을 멋스러운 풍류(風流)로 생각한 듯하다.
이러한 봄날의 감상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하여 지금도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글 중에 조선조 정극인이 쓴 상춘곡을 꼽을 수 있겠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라고 읊었는데, 그 얄궂은 봄기운(春氣)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어디 ‘수풀에 우는 새’ 뿐이겠는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놈의 몹쓸 봄기운을 시(詩)나 노래로, 그리고 악기 연주나 몸짓으로 형상화 하였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그 흔적들이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되어 전하기도 하지만, 계층 간에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내용도 더러 있어서, 지금의 꽃놀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지금이나 미래에도 품격 놓은 상춘객의 모습인지를 생각해 본다.
지난 주 벚꽃으로 뒤덮였던 경주는 전국에서 몰려든 상춘객들로 온통 들썩 거렸다. 4월 3일부터 시작된 ‘경주벚꽃축제’ 기간 동안은 날씨도 좋았고, 마지막 날은 절기(節氣)도 잘 맞아서 음력 삼월 삼짇날 꽃놀이 땜을 톡톡히 한 것 같았다. 경주로 진입하는 도로는 물론이고, 시내든 외곽이든 경주 곳곳이 차량들로 뒤엉켜 불편함도 많았지만, 찾아온 상춘객들로 모처럼 국내 최고 관광 도시다운 활기가 넘쳤다.
이번 축제기간 동안 경주지자체에서 새롭게 기획한 ‘벚꽃 버스킹 패스티벌’은, 넓은 장소에 대형 무대를 설치하고 대중들을 동원하던 종전의 축제의 틀을 바꾸어, 상춘객들이 몰려드는 요소요소에 작은 무대를 설치하고, 소박하면서도 다양한 공연을 시간대별로 탄력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엄청난 출연료를 주고 이름난 연예인들을 모셔오는 대신에 경주 시민들이 평소 닦아 왔던 예술적 솜씨와 감춰왔던 끼를 유감없이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면서 관광객과 시민이 함께하는 멋진 꽃놀이가 되었다.
이번 ‘벚꽃 버스킹 패스티벌’의 무대 위에 올라 솜씨 자랑을 한 여러 지인들의 공연을 뒷전에서 지켜보면서, 또 뒷풀이 자리에 끼어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평범한 시민인 그들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웃음들을 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작은 한 무대의 기획과 진행을 맡았던 몇 분들과 진지한 토론도 해봤다.
꽃피고 새잎 돋는 아름다운 봄날에, ‘역사를 품은 도시, 미래를 담는 경주’의 시민으로서 꽃놀이의 향기와 품격을 어떻게 높여갈 지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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