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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물 마른 물꼬 싸움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8년 08월 23일
       ↑↑ 최 병 섭
             수필가
ⓒ 서라벌신문
으스름 달빛 아래 젊은 과수댁이 봇도랑 웅덩이에 앉아 목욕을 하고 있는데, 초저녁잠을 자고 난 동네 한 남정네가 논에 물을 대러 왔다가 그 장면을 보고는 민망한 듯 조용히 뒤돌아갔다. 한참 후에 다시 오니, 그 여자는 여전히 몸에 물을 끼얹으며 앉아 있었다. 남자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하고 되돌아갔다가는 잠시 후에 다시 와서 옷을 벗어던지고 그 웅덩이에 풍덩 뛰어들었다. 자기 논에 물을 대놓고 벗은 몸으로 장시간 물꼬를 독점하고 있었던 그 여자는 기겁을 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릴 적 마을 어른들에게 들은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벌인 치열한 신경전의 한 예라 하겠다. 사실은 그랬다. 이웃끼리 오손도손 살아가는 자연부락 사람들도 가뭄이 심하여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내 곡식이 타들어 갈 때쯤이면, 그간의 체면과 도리와 인정은 어디가고, 모두들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민심이 흉흉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꼬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이웃끼리 멱살잡이를 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한 경우 삽이나 낫을 휘두른 인사(人死) 사고가 세상을 놀라게 한 일도 더러 있었다.
요즘의 큰 저수지나 보(洑)는 국가 차원에서 건설하고 수문 관리는 수자원공사에서 하고 있다. 지방의 작은 못이나 봇물은 그 지역 수리조합에서 관리.통제하며 필요한 때 적정량의 물을 흘러내려 보낸다. 그러면 그 아래 크고 작은 들판에서의 물꼬 관리는 그 지역에 농민들의 자체 불문율에 따라 사이좋게 물을 나누어 대었지만, 가뭄이 들어 수량(水量)이 부족하게 되면 평소와 달리 ‘아전인수(我田引水格)’격의 행동들이 나타나기 일쑤였다.
세계는 지금 4차 산업 사회에 진입해 있고, 우리나라도 국가차원에서나 국민의식 면에서 미래지향적 새로운 기간산업의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1차 산업 사회에서나 어울릴 필자의 ‘물꼬 싸움’이라는 글이 생뚱맞다고 할 독자도 있으리라.
과연 그럴까?
올 여름 더위는 너무 유별나서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은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전기)부족과 생활용수 부족을 걱정하는 아우성은 별로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정부 발표는 전기가 남아돌아간다고 했고, 어느 관계 장관은 4대강 사업이 잘못되어 수문을 열어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열어 물을 흘려 내렸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물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는 물론이고, 생활용수를 그야말로 물을 물 쓰듯 하면서 부족함을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해방 이후, 물 확보를 위한 조림사업, 물 관리를 위한 대형 저수지와 보(洑) 건설, 급격하게 늘어날 에너지 수요에 대비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세계적 전문기술 인력 양성 등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온 역대 지도자들을 존경한다.
이번 여름의 혹독한 더위만큼이나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과 그간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뜨거워지고 있다. 대기업은 위축되어 있고, 중소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이고, 영세 상인들은 생계를 위협 받고 있고, 실업자 수는 더 늘어났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궁색한 변명과 아전인수 격 동향 분석, 임기응변식 대응에만 급급하여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는 상당한 괴리(乖離)가 있어 보인다.
농민들이 물꼬 싸움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생활을 하려면 논과 밭에 댈 물이 풍족하면 되고, 그 물을 풍족하게 공급하려면, 평소에 저수지 보(洑)를 만들고 이를 잘 관리하여 물을 가득가득 담으면 된다. 그 일은 정부가 할 일이고 지도자가 할 일이다.
지금 정부의 경제정책 행보는, 저수지를 막고 물 가둘 궁리는 하지 않고, 뒷물 마른 물꼬에서 이리저리 공평하게 물 나눠주는 일에만 몰두하는 형상으로 가고 있다.
그래봐야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고, 흔적없이 증발해 버릴 그 귀한 물을 말이다.

※사외(社外) 기고는 서라벌신문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8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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