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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禁忌) 줄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20년 02월 13일
↑↑ 최 병 섭
수필가
ⓒ 서라벌신문
정월 대보름이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 지나가 버렸다.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지역의 안전과 풍요, 액운소멸, 소원성취 .....이 모든 바램을 담아 시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하고자 했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민속 문화행사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 차원에서 취소되었다.
주기적으로 돌발하는 신종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한 상황이다. 예로부터 ‘돌림병’이 창궐하면 그 지역 사람들의 진출입을 통제하거나 심지어는 완전 봉쇄하기도 하는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지경에 이르면 온갖 괴담들로 민심이 흉흉하여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돌림병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건강이나 가족의 안위는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적 환란과 자연 재해를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경험한 인간들은 한없이 나약하여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찾아 삼가 행동했다. 그래서 민족과 나라, 지역에 따라 다양한 대상을 찾아 샤머니즘(Shamanism), 토테미즘(Totemism)이즘, 애니미즘(Animism) 류(類)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이를 좀 더 체계화한 종교란 이름의 특정 신앙을 각자 가지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불안한 때에, 전통 민속 문화 중에 ‘금기 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자어로 쓰는 금기(禁忌)의 사전적 풀이는 ‘마음에 꺼려서 싫어하거나 금하여 피함.’이라고 풀이되는데, 여기에 ‘줄(線)’이라는 명사를 덧붙인 ‘금기 줄’이 되면, 금기의 의미는 좀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확장되어 쓰였다.
예로부터 아기가 태어났을 때 대문에 새끼를 꼬아 금기 줄을 쳤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외부인들의 출입은 당연히 마음에 꺼리거나 싫어할 수밖에 없으니, 가장 신성하고 지엄한 금줄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과 면회실 안과 밖을 갈라놓은 유리벽은 옛날의 금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금기가 철저하여 할매와 할배의 출입은 말할 것 없고, 산모까지도 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섬마을과 해변 마을, 산골 마을, 농촌마을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해오는 동제(洞祭)도 예로부터 금기가 엄격했다. 주민들의 숙의로 제관과 집사로 선정된 사람들은 그날부터 동제를 올리는 당일까지 목욕재개(沐浴齋戒)하고 음식, 외부 출입, 사람 대면을 극히 제한했고, 동제를 지내는 당수나무, 성황당, 용궁....주변에도 금줄을 쳐서 잡인의 출입을 금하게 하여 신성화(神聖化) 했다.
간장독과 된장독에 새끼로 둘러쳐 놓은 금줄에 매단 숯과 고추 등은 따지고 보면 엄청 과학적이다. 유해한 균(菌)과 충(蟲)들이 장독 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거나 새끼줄 속에 모이게 하는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다. 장독대 전체 둘레에 둘러친 금줄은 주부 이외 타인의 출입을 금하는 경고의 표시며, 어린아이나 가축들의 출입을 막는 바리게이트 역할을 했다.
현대판 ‘금기 줄’도 참 많다. 사건 현장 증거 보존을 위해 일반인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 ‘P0lice Line’, 극성스런 기자들의 질서유지를 위해 설정한 ‘Photo Line’도 있고, 거물급 범법자의 호송 이동로에 경찰 병력으로 겹겹이 둘러친 ‘인(人)의 장벽’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관념적 의미를 담은 ‘금기 줄’도 있다. “정부가 어떤 부문에 대한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정한 규제의 범위. 혹은 방향이나 목표, 방법 등을 안내하는 지침”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가이드라인(Guideline)도 있고, 어떤 일이나 사안에 대해 받아들이거나 인정할 수 있는 최저 한계선을 뜻하는 비유적으로 표현한 마지노선(Magino線)이란 말도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적절한 ‘금기(禁忌)의 줄(線)’이 아니겠는가?
나라 전체가 오랜 기간 동안 정치 대립과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 안타깝다. 끝없이 내닫는 정치인들의 아집과, 정론이 어지러운 언론계는 뭐 그렇다 치고, 학자들과 종교인들까지도 편을 갈라 치졸한 뿔싸움을 하고 있으니, 어리석은 백성들까지 우왕좌왕하는 형상이다.
2020년 정월 대보름을 쐬면서 며칠 째 마을마다 소원성취와 화합을 다지는 풍물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의 가슴 속에 신성(神聖)하고 든든한 ‘금기 줄’ 몇 개쯤은 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외(社外) 기고는 서라벌신문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20년 0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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