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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배우는 글쓰기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1월 24일
↑↑ 권 은 민
변호사
ⓒ 서라벌신문
아! 누이 시집가려 새벽에 화장할 때가 마치 어제 같다.
나는 겨우 8살로 발 장난치며 교태로이 누워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듯 했지. 누이는 부끄러워하며 얼레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맞췄기에 나는 성을 내며 울면서 먹으로 분을 섞고 침을 거울에 뱉어 더럽혔었어.
그러자 누이는 옥으로 된 기러기와 금으로 된 나비 노리개를 꺼내 나에게 주며 울음을 그치게 했으니,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일이로구나.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馬展, 效婿語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박지원(朴趾源,1737년 ~ 1805년), 연암집 2권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1년 전 백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와 섭섭한 마음을 달래며 글 한편 썼다. ‘순서대로 떠나는 인생’이란 제목으로 화장장에서도 번호표를 받아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현 세태를 묘사했다.
그 후 우연히 조선시대 문집을 보다가 행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행장(行狀)은 망인의 인적사항이나 행적을 간략히 기록하는 문장의 한 형식이다. 백부의 행장을 써 보기로 했다. 내가 50대 중반이고 백부가 아흔이었으니 같이 공유한 경험이 무척 많으련만 막상 행장을 쓰려하자 쓸 것이 많지 않았다. 나의 식견 부족과 기억력 한계를 한탄하면서 조금씩 내용을 채워나갔다. 글을 다 쓰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구체성이 부족했기에 감동이 없었다. 그때 연암의 이 글을 읽게 되었다.
 연암이 쓴 글의 배경은 누님이 돌아가신 후 자형을 배웅하는 장면이다. 자형은 가난을 견딜 수 없어 아내의 상여를 싣고 아이들을 데리고 조각배로 서울을 떠난다. 장소는 서울 성동구 옥수동 근처의 두미포 나루다. 떠나는 자형은 담담한데 보내는 연암은 눈물로 옷을 적시며 망연히 언덕에 서 있었다. 그때 연암은 열여섯 누나가 시집가던 날 아침을 회상한다. 그런 인연이 있던 누나가 돌아가셨다니 얼마나 애통할까? 누나와 남동생은 세상에 흔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상황묘사가 있기에 연암과 큰 누님 사이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백부와 함께 살아온 그 많은 날에도 이런 장면이 왜 없었겠냐마는 나는 백부의 행장에 이런 장면 하나 기록하지 못했다. 아, 애통하다. 나의 관찰력 부족을 한탄할 뿐이다. 기억을 조금 더 더듬자, 국민학교 방학 때가 떠올랐다. 사촌형제들과 집안에서 놀고 있을 때 밭일을 마친 백부가 지게에 쇠꼴을 가득 지고 마당으로 들어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서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마당으로 들어서던 백부에게서 싱그러운 풀냄새가 났고 지게꼬리엔 산머루가 달려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백부의 부재가 실감난다. 이젠 명절이 되어도 다시 만날 수가 없다.
 
 연암의 처남 이재성은 이 묘지명에 대해 평을 남겼다. “정을 따르면 지극한 예가 되고, 경치를 묘사하면 참된 글이 된다. 글이란 게 어찌 정한 법칙이 있겠는가? 이 글을 옛 사람의 글로 읽으면 마땅히 다른 말이 없겠지만, 지금 사람의 글로 읽으면 의심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니 상자에 넣어 비밀스럽게 간직하길 원한다.” 연암의 글은 당시의 전형적인 묘지명 형식을 벗어났기 때문에 비밀리에 간직하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재성의 평에서 ‘정을 따르면 지극한 예’가 된다는 말에 주목한다. 글이라는 게 어찌 정한 법칙이 있겠는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극히 하면 예가 될 수 있다 했으니, 힘써 행할 뿐이다.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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