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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맑은 기운 듬뿍 담아…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1월 17일
↑↑ 최 병 섭
수필가
ⓒ 서라벌신문
지난해 아내와 함께 한의원에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찬찬히 진맥(診脈)을 하시는 원장님에게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우리 신랑 살 쫌 찌게 해주시고요, 저는 살 쫌 빼 주이소.’ 원장님은 웃으면서 “선배님은 성품이 워낙 깔끔하시어 살 찔 체질은 아니고요, 사모님은 그 몸에 뺄 살이 어딨다고 그라시능교”라고 하셨다.  
필자는 젊을 때부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깐깐하다’ ‘예민하다’ ‘세심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성품이 깔끔하다’는 말을 원장님께 처음 들었다. ‘까탈스런 내 성격을 저렇게 듣기 좋게 표현 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크게 한 수 배웠다는 생각과 함께 기분 좋은 여운은 오랫동안 남아 있다. 아내도, 누가 보나 나잇살 만만찮은 몸이지만,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에 조문(弔問)을 갔었는데, 상주가 나의 손을 잡더니, ‘니 와이래 파싹 늘거뿐노?’ 라고 해서 상당히 황당했다. 어릴 때부터 객지에 떠돌던 그 지인의 눈에 수 십 년 만에 만난 필자가 늙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조문(弔問) 자리의 첫 인사 치고는 참으로 고약하였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서 무심결에 튀어나온 반가운 정감의 표현이라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평소 필자의 건강에 대해 반갑잖은 걱정을 해주는 지인들도 더러 있었다. “와 이레 말랐노? ‘마이 묵어라.” “안색이 안 좋네, 어디 아프나?....”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냥 웃어넘길 수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런 소리 한번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고, 집에 돌아와 거울 속 내 얼굴을 살피며 심각한 고민에 빠질 때가 많았다.
멀쩡하게 건강한 사람도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는데, 병원에 문병 가서 수심(愁心)가득 담은 얼굴로 환자의 안색과 표정에 대해 불편한 말들을 하여 환자를 절망시키는 사람들도 더러 본다. 환자 앞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독약보다 더 치명적일 수도 있으니, 병문안 가서는 말을 조심할 일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 ‘립 서비스’란 말이 참 재미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입에 발린 소리’가 가장 적합한 말이 되겠지만, ‘체면치레 말’, ‘방송용 멘트’, ‘겉치레 인사’ 등으로 옮길 수 있겠다. 이런 말들은 ‘덕담(德談)’과는 뉘앙스가 좀 달라서 성의와 진실성이 좀 부족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하는 감성 노동자나 유별난 민원인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 하급 공직자들의 의무적 ‘립 서비스’도 진심을 담아 상대와 좋은 관계로 맺어가며 자신의 품격을 높여가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많다.
조심해야 할 ‘립 서비스’도 있다. 영향력 크고 책임 중한 고위공직자들이나 조직의 리더가 교활한 사람들의 위선적인 ‘립 서비스’에 도취되면 그 조직의 질서는 흐트러지고 자신의 권위와 품격은 떨어져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도 있겠다. 이렇듯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의 질(質)은 ‘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낯선 사람과 잠깐 스치듯 만나서 주고받은 짧은 한 마디 속에서도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있고, 오랫동안 함께 한 사람 중에서도 매번 부정적이고 거친 말로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가정에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잔잔한 칭찬 한 마디가 부부간 최고의 명약임에도 많은 남자들이 그게 잘 안 되어 아내에게 불이익을 받을 때가 많은데, 친한 사이일수록 낯간지러워 ‘립 서비스’를 잘 못하는 대한민국 남자들, 특히 경상도 사나이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필자 또한 그러하나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칭찬과 선의(善意)의 거짓말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난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 누구나 경험한 일이지만,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해 주신 사소한 칭찬이나 가르침이 평생 기억에 남아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어른들이 주신 덕담으로 인해 어려움 속에서도 힘든 세파를 헤쳐나가 결정적 버팀목으로 작용하였음도 어렵잖게 보고 있다. 그래서 가정이나 학교와 사회에서 어른들의 맑고 밝고 희망을 담은 긍정의 덕담이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기해년 신정을 맞이한 지 보름이 지났고, 구정을 보름 앞두고 있다. 부모형제 일가친척과 친지, 직장동료 그리고 인연 맺은 모든 사람들과 맑고 밝은 기운 듬뿍 담은 긍정의 덕담 서로 주고받으며,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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