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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8년 11월 23일
↑↑ 최 병 섭
수필가
ⓒ 서라벌신문
열흘 전 입동(立冬)을 지냈고, 5일 후면 소설(小雪)이다. 며칠 전, 밖으로만 나돌던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서재(書齋) 정리를 하다가 빛바랜 한 권의 책에 눈이 꽂혔다.

『길고 긴 일주일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에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에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기인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뿜으며/ 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 들면/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의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 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 위에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하략(下略)』

1984년에 발행된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신혼 日記’의 한 부분이다. ‘박해 받는 노동자 해방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박노해’. 그는 자신의 본명 박기평과 신상을 숨기고 노동현장에 숨어들어 노동 운동을 하다가 ‘사노맹’조직 등의 일로 1991년 체포, 사형 선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998년 광복절 특사(特赦)로 석방되면서 전향, 혹은 변절이라는 평가로 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1984년 9월에 발행된 이 책은, 그전부터 이어온 정치적 혼란과 고도의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시적 감성으로 담아내어 당시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젊은이들의 감성과 의식(意識)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거친 시어를 통한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고발, 담백하고 소박한 어조로 노동자의 애환 전달과 공감대 형성, 사용자를 향한 저항과 분노를 표출한 선동적 언어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결속을 유도하는 이념과 행동 제시.... 그래서 당시 금서(禁書)로 분류되었지만, 100만부가 발행되어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혔다는 시집이다.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노동자들을 대변한 노동 운동가 박노해의 생각은 당시로 보면 선구적일 수 있겠으나, 노동자와 사용자를 지나치게 극단적 대립의 관계로 설정한 점에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 당시,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이어온 급변한 산업화와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은 농촌 인구의 이농(離農) 현상과 도시 집중현상으로 나타나면서 사회 구조의 대변혁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소위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은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고, 힘들긴 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기꺼이 그 곳에서 잔업도 마다않고, 저임금에도 몸 아끼지 않았다. 그 대가로 부모님들이 겪었던 그 어렵고 어두웠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 개개인의 노력이 모여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필자는 거의 매일 새벽 6시 이전에 집을 나선다. 거리에는 1시간 가까이 새벽일 나가고 야간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노동자들의 장엄한 행렬을 만나게 된다. 어둠 속에서 중.대형 출퇴근 버스와 승합차들이 줄지어 그들을 실어 나른다. 아직 잠도 덜 깬 어린 아기를 어린이 집 버스에 태워 올리고는 종종 걸음으로 회사 차에 오르는 젊은 엄마들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들 중에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 모두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 나라에 찾아든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은 모두들 어렵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취직이 안 된다고 실의에 빠져있고,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으로 어렵다고 아우성이며,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서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미래와 세계를 향해 전력을 다해야 할 대기업은 신기술 계발과 국내 재투자와 직원채용에 소극적이다. 이 모든 총체적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할 것 같은데,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 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박노해』
박노해 시인이 ‘노동의 새벽’ 첫머리에 짧게, 그러나 강하게 던진 메시지다. 당시 그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의 중심에 계시는 분들의 경제 정책의 기조가 되어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과 함께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외(社外) 기고는 서라벌신문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8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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