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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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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1  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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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충남 논산에 있는 명재고택에 다녀왔다. 수백 개의 장독 항아리가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종갓집에서 종가음식 만들기, 염색 체험을 하면서 한 나절을 보냈다. 뭔가를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몸을 움직인 후에 생활소품을 얻는 프로그램이 좋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 결과로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을 얻는 일은 즐거웠다. 

체험놀이를 마치자 저녁이 되었다. 고택의 육간대청 너른 마루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문학 강좌. 오석민 선생이 “동아시아에서 종법이란? 종가는 어떻게 출현했을까?”라는 제목으로 종가의 생성과 소멸을 이야기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사회는 종법(宗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동일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한 지역에 세거(世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양난을 겪은 조선은 주자의 신유학을 받아들여 종법과 예학(禮學)으로 사회를 통치했다. 두 번의 난리로 어수선해진 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장자(長子)우선의 질서를 강조하고 양반과 평민 그리고 남녀를 구분하는 예학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런 시도는 성공한 것 같다. 조선은 양난의 혼란을 겪은 이후에도 다시 300년을 더 이어갔다. 그 기간 중에는 영조 52년과 정조 24년의 약 80년간의 문예부흥기가 있었다.

조선시대 종갓집의 살림규모를 조사해 보면, 평균적으로 매년 쌀만 300석 정도를 소비하는 규모의 살림살이를 했다. 종손은 예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행사를 주관하고, 종가로 몰려오는 손님을 치르고, 나아가 주변에 사는 마을 사람들까지 돌보았다. 지역마다 종갓집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까닭이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사회 환경이 변하였다. 정부수립 후 토지개혁으로 종가의 경제적 기반인 토지가 사라졌다. 민법의 제정과 개정과정에서 맏아들을 중시하는 종법원리가 힘을 잃고 남녀균분 상속제도가 정착되었다. 이로 인해 세대를 거듭할수록 종가재산은 쪼개어졌다. 이제 종가는 이름만 남았다.  

하나의 제도는 정신적 근거와 물리적 기반이 합쳐져야 완성된다. 세월이 흘러 가치기준이 변하고 물리적 기반도 무너지면 그 제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300년 전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법제도, 그 제도로 인해 생겨난 종가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다. 막연히 알고 있던 종가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들었다. 종가의 소멸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멸하는 종갓집에 연루된 종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한민국은 향후 300년간 지속할 수 있을까요?” 강의 중에 나온 질문이다. 과거의 제도를 오늘의 기준에서 평가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현재의 내 모습, 우리 사회의 모습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장래와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통일된 조국의 장래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300년을 견딜 수 있는 신념체계는 무엇일까? 사회 구성원인 시민들이 행복한 나라, 갈등이 생기면 합리적인 절차로 해결하는 나라, 힘보다는 문화를 존중하는 그런 나라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 나부터 고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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