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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근대미술의 태동 (2)황술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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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6  16: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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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수련) 수채

1930년 동경미술학교 졸업 이후 1399년 타계할 때까지 화가로서 9년이란 짧은 여정 동안 얼마만큼의 작품이 제작되었는지 지금은 몇 작품이나 현존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근대미술연구가 이경성에 의하면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때만 하더라도 황술조의 작품은 단 한 점도 없었다. 다만 화가 이마동이 소장하고 있던 1937년대 몇 장의 데생이 전해질 따름이다. 그나마 시험지에 붓으로 그린 습작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근대미술의 한 부분을 살아온 화가를 영 잃어버릴 뻔 하였다. 그러다 1974년 경주에 있는 그의 형 황찬조의 집 창고에서 70여점에 달하는 황술조의 유작이 발견되었다.

그 중 반 정도는 손상이 심하였고 상태가 양호한 작품은 서울로 올라가 여러 소장가에게 분산 소장되었다. (중략) 화가 황술조의 재평가는 1974년 발견된 유작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 유작들이 분산 소장되는 바람에 그 진가를 알아보기 힘들다. 다만 한국미술전집 15권에 수록된 호암컬렉션의 「연못」과 비추어 본다면 그의 작품세계가 근대에 존재했던 어느 화가보다도 뒤지지 않는 실력있고 당당한 화가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 호암미술관 소장 - 연못(수련)

또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에 의하면 “그렇게 세상을 떠났던 그는 1970년대 초 그의 유작이 40여 점이 발굴됨에 따라 한국화단으로 살아 다시 돌아왔고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뒤늦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중략) 그의 1940년 유작전이 개최될때 유화 50점이 출품되었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최소 90여점은 남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유존작품은 20여 점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존 작품에 관련하여 앞의 두 사람의 글을 살펴보면 이경성은 황술조의 작품이 발견될 때 70여 점이라고 하였다. 그 중 상태가 양호한 일부가 서울로 올라와 분산 소장되었다고 하였다. 윤범모는 1970년 초 그의 유작 40여 점 발굴이라고 한 것과 같은 작품으로 본다면, 1974년 발견된 작품이 40여 점이라고 본 윤범모의 논지로는 서울유작전 때 출품된 50여 점이 경주 고향집에서 발견된 40여 점을 포함하여 90여 점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윤범모의 추정이 옳다면 서울유작전 때 작품이 서울에서 전부 소비가 되었든지 고향 경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앞의 내용 중, 「경주 발견 40여 점 분산 소장」과 관련하여 몇몇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일부 개인 소장 작품으로, 나머지 대부분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 유족(외손자) 소장품은 솔거미술관에서의 「경주미술의 뿌리와 맥 7인전」을 기획하면서 경주미술협회 박선영 지부장과 필자가 함께 서울의 외손자를 찾아가 자화상을 포함한 유화 4점과 감포 폭풍우 스케치 1점을 실견 확인한 바가 있다.

   
▲ 호암미술관 소장 - 소년

또한 2014년 8월에 황동근씨(황찬조의 아들)의 지인이 소장하고 있던 수채화 「연못(수련)」이 부산에서 발굴되어 경주예총 사무실에서 경주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공개행사를 가진 바 있다. 금번에 발굴된 황술조의 수채화 작품 「연못(수련)」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황술조의 작품은 유존양도 적은데다 수채화는 더욱이 희소성이 있는 작품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호암미술관 소장 「연못」(캔버스 유채)과 같은 소재인 연못의 수련을 그린 작품으로, 호암소장품과 견주어 보면 붓질의 부드러움과 색채의 풍부함이 돋보이는 수채화의 투명성에 약간의 불투명 표현이 더해져 유화를 보는 듯한 느낌과 깊이감이 있는 수작이다. 절제되고 계산된 신중한 표현의 손일봉 작품과는 또 다른 활달하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하겠다.

유족작품에 대해서는 앞으로 새로운 자료 및 미공개 작품들이 발굴되어 황술조의 참다운 면모가 드러나길 바라며 한국미술사에서 위상은 물론이고 경주 근대미술의 출발점의 작가가 토수 황술조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최용대 서양화가
경주 미술사 연구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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