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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준의 일제기 금관총 출토유물 이야기 ⑩
최부식 기자  |  bschoi7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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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8  15: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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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기 금관총 출토유물 이야기’는 ‘아라키 준’씨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공개한 ‘조선총독부박물관 자료’를 토대로 연구해, 『한국사연구 』 174집(2016년 9월)에 실은 논문이다. 일제 때, 발견된 금관을 두고 경주시민이 편 유치운동 등 당시 상황을 씨줄날줄로 엮은 내용은 경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금관총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한 까닭에 저자와 협의 후, 연재한다.

아래 글은 아라키 준씨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를 분석해 펼치는 논고로, 연도는 1921년, ‘*’표기는 세키노의 증언과 날짜별 문서, ‘(아)’표기는 아라키 준씨의 내용 풀이다.  

3) 유치(留置)운동의 전개

10. 20. * 유물을 21일에 이송하는 것으로 됐으나 경북지사로부터 인도유예(引渡猶豫)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아) 이 전보 발신 전날인 10월 19일에는 경성에 올라갈 모로가를 비롯한 진정위원들이 대구에 들르고 경북도청을 방문했다. 경북지사의 ‘인도·유예해 달라’는 연락의 배경에는 이 움직임, 즉 모로가들의 ‘압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진정위원 12명이 경성에 가서 총독과 총무정감에게 면회, 유물의 경주 유치의 약속을 얻어냈다.

* 총독부 학무부장으로부터 세키노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안이 기안되었다. - 용건이 있다. 급히 귀부(歸府) 바란다. 발견유물은 휴대할 필요가 없다. 정리에 필요한 인원만 남기고 다른 사람은 다 동행해주기 바람

(아) 워낙 지역주민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총독부 측은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게 돼, 현장에서 세키노를 불러 다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0. 21. * 세키노, 오가와, 노모리 등이 일단 경성에 돌아갔다. 가는 길에 세키노가 경북지사와 면회했다.

10. 24. * 경북지사로부터 총독부 학무국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2통의 전보가 발신되었다.

- 경주고분에서 발굴된 고기물(古器物)을 경주에서 보관해달라는 지방민의 희망은 지당(至當)한 것으로 사료돼, 또한 여론도 고조되어 있어 선도(善導)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 바에 박물관분관 설치의 건 실현시키도록 배려해주시기 바란다(1)  

- 분관설치에 관해서는 최소한도의 규모로 하여 상당한 부분 지방민으로부터 기부가 올 전망이다. 이번 건에 관해서 현재 상부(上府) 중인 내무부장에게 자세히 지시해주시기 바란다.
   
(아) 이 문구에 나타난 ‘내무부장’이란 후일 경주유지들과 협의해서 일시적인 해당 유물의 경성 이송을 설득한 하타(秦)이다. 하타는 경부지사의 명을 받아, 총독부 측과 경주유지들 사이를 조절하는 실무담당자였다.

10. 28. * 10월 27일부터 경북내무부장인 하타가 경주유지들과 협의하여 다음과 같은 전보를 총독부 학무국 조적조사과장 앞으로 발신했다.

- 어제부터 당지 유지들과 회동하여 여러 가지 설명한 끝에 그 양해를 얻어 무사히 발굴물을 받아, 오늘 야행열차로 총독부로 향해 발송한다.

10. 29. 금관총 유물이 총독부박물관에 도착, 현재 정리중임. 

  이상과 같이 금관총 유물 경주 유치운동은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겪었다. 총독부 측은 경주유지들의 집요한 저항에 직면하면서, 앞으로 해당 유물을 경주에서 보관한다는 조건으로 일단 총독부박물관에 이송시켰다. 총독부박물관에 이송된 금관총 유물은 우메하라가 중심으로 조사돼, 1924년에는 『금관총과 그 유물(慶州金冠塚と 其遺物)』이라는 보고서가 간행됐다.   

 한편 경주에서는 금관총 유물을 보관·전시하기 위한 건물건립 준비가 진행됐다. 1921년 12월 5일 동아일보에는 ‘경주유물보존기성회에서 과일 가사무소(假事務所)에서 유물진열관 건축에 취하야 위원회를 개최하고, 동관 건축공사를 약 1만원으로 예정하야 기출자(其出資)의 배정(排定)을 동군 11면으로부터 약 5500여 원, 그 잔여를 경주면으로부터 갹출하기로 하얐는데, 동 공사는 명춘조(明春早**) 착수하리라더라’는 기사가 나왔다.

 결국 새로운 전시관이 완성돼 1023년 10월, 일반 공개에 맞추어서 금관총 유물은 대부분 경주에 반환됐다. 금관총 유물을 둘러싼 총독부 측과 경주유지들이 한 달 가까운 힘겨루기는 결굴 경주유지들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1) 이 구절을 통해, 경북지사가 총독부 측과 경주유지들 사이의 중간역할 한 것을 알 수 있다. 총독부 측이 금관총 유물을 총독부박물관에 보관하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에는 그런 귀중한 유물을 보관할 만한 제대로 된 시설이 없다는 점이었다. ‘박물관 분관 설치’란 이런 가운데 구상돼, 실제로 1923년 해당 유물을 보관·전시하기 위한 전시관(후일 ‘금관고’라고 불림)이 진열관 부지에 건립되고, 1926년 6월에는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이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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