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 일제기 금관총 출토유물 이야기
아라키 준의 일제기 금관총 출토유물 이야기 ⑨
최부식 기자  |  bschoi787@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4.11  13:33: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일제기 금관총 출토유물 이야기’는 ‘아라키 준’씨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공개한 ‘조선총독부박물관 자료’를 토대로 연구해『, 한국사연구 』 174집(2016년 9월)에 실은 논문이다. 일제 때, 발견된 금관을 두고 경주시민이 편 유치운동 등 당시 상황을 씨줄날줄로 엮은 내용은 경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금관총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한 까닭에 저자와 협의 후, 연재한다.

3) 유치(留置)운동의 전개

1921년 9월 21일, 우연히 발견된 금관총 유물과 수습된 유물을 경성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를 경주 지역사회가 일찍 감지해 유물이 경주에 남도록 경성 이송을 막는 유치운동을 적극 펼쳤다. 

   
▲ 최윤 등 당시 경주 유력자들의 이름이 보이는 청원서

유치(留置)운동을 하게 된 배경은 금관총에서 금관 등 신라왕의 위용을 처음 봤다는 점이다. 즉, 그간 경주시민들은 첨성대, 석탑, 왕릉, 안압지 등 석조나 토기류 유물과 유적만 알고 있었지, 금관은 처음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그들도 ‘미증유 진품’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또한 금관을 본 경주시민들은 드러내놓고 말을 못했겠지만 개개인과 지역 유지들은 마음속으로, 또는 끼리 모여서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위대한 신라의 후손’, ‘민족 자긍심’을 느끼며, 빼앗긴 땅이라는 현실에 통분했을 것이다. 

이런 짐작을 해보는 건 금관총의 유물을 단 이틀 간 공개할 때, 하루에 2000명의 경주시민이 관람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경주군의 전체(경주 시가지가 아닌) 인구는 15만 5927명(1921년 기준. 조선인 15만 3928명, 일본인 1970명, 기타 외국인 29명/ 조선총독부 1933년 조선총독부 발간 ‘생활상태조사(7)-경주군’ 편)었다.

   
▲ 청원서 내용1

당시 경주군의 교통편, 대가족 중심, 대규모 촌락 등을 감안할 때, 하루에 2000명이나 되는 경주민들이 와서 금관을 직접 본 셈인데, 당시 상황이 놀랍다. 불과 2년 전, 3·1독립만세의거가 있었고, 만세의거에 버금가는 하루 2천 명이 경주 중심에 모여들었으니 일제 경찰이 얼마나 놀랐겠으며, 총독부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이후 유치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돼 그 반향이 널리 번져나갔다. 

아래 글은 아라키 준씨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를 분석해 펼치는 논고다. 연도는 1921년, ‘*’표기는 세키노의 증언과 날짜별 문서, ‘(아)’표기는 아라키 준씨의 내용 풀이다.

해설 : 최부식  


10. 11.

*유물 경주유치를 위한 시민대회가 개최됐다. 세키노 참가자 27명이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이와미 경찰서장은 경북지사 앞으로 5백 명이 참가했다고 보고함 

(아) 이와미 서장은 유물 경성 이송을 막으려고, 혹은 지연시키기고 총독부 측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참가자 수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10. 14, 15.

*경주경찰서에서 발굴품 모두를 시민에게 공개했다. 하루에 2000명이 모였다. 

10. 15.

* 경주공립보통학교 마당에서 다시 시민대회가 개최됐다. 5백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아) 시민대회가 경주공립보통학교(학교가 현 성동시장으로 옮겨가지 전까지 현 동경관을 빌려 씀)에서 개최된 배경에는 이 학교의 교장이었던 오사카의 협조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내선인(內鮮人) 19명이 유물 경주유치를 바라는 청원서〈자료 사진〉가 조선총독부에 발송됐다.
        
10. 18.

*경주시민대회의 명의로 총독부 학무국장과 학무국 고적조사과장에게 유물을 경주에 보존하는 것을 요청하는 전보가 발신됐다.

10. 19.

*경북지사로부터 조선총독으로 금관총 유물 발굴에 관한 공식보고가 발송됐다. 

(아) 일반적인 보고의 말미에 ‘(이 유물들은) 미증유의 진품이므로 경주 주민은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보관되도록 절망(切望)하고 있고, (중략) 가능하면 일단 정리가 된 후는 상당한 방법에 의하여 보존회에서 보관되도록 검토해주시기 바란다’는 구절이 보인다. 이런 구절로 봐서 경북도청은 어느 편인가 하면 총독부보다 경주유지들 편을 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 19.  

(아) 총독부 학무국에서 경북지사 앞으로 보내는 전문안이 작성되었다. 

* 경주시민대회의 명의로 이번 발굴물을 경주에서 보존하도록 청구해왔으나, 일단 본부에서 현물을 조사하고 지방민의 의향도 참고해 앞으로 보관방법을 결정해야 하므로, 세키노 박사 귀성 시 위탁하여 지방민의 경거(輕擧) 등 없도록 지시해주기 바란다.

(아) 원래 총독부 측은 금관총 유물을 경성으로 이송하고, 총독부박물관에서 영구적으로 정리연구보관전시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주유지들의 반대가 강력해서 10월 19일에는 방침을 수정해 일단 경성으로 이송하되 ‘지방민의 의향도 참고해 앞으로 보관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유물의 경주보관의 가능성을 열기 시작했다. 말미의 ‘경거 등은 없도록’이라는 문구를 통해 총독부가 경주유지들의 동향에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유물 정리가 끝났다.

* 모로가는 진정원(陳情員)을 이끌고 대구로 가고, 그 뒤에 또 경성에 올라갔다.

 

최부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발행인인사말신문사소개편집규약기사제보/독자투고광고안내/구독신청기타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38098 경북 경주시 양정로 273 경주인쇄소 3층  |  전화 : 054-777-6556~7  |  팩스 : 054-777-6558  |  mail : press@srbsm.co.kr
등록번호 : 505-81-42580  |  발행인 : 김현관  |  편집인 : 김현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병준
Copyright © 2017 서라벌신문. All rights reserved.
서라벌신문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