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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햇빛 할배를 기리며


서동훈 논설실장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4년 10월 21일

우리 한글만큼 고생스럽게 살아온 언어도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천대 박대가 그치지 않는다. 유네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고 북을 쳐주어도 한글에 대한 구박은 여전하다. 영어 문법 틀린 것은 부끄러워해도 한글 맞춤법 틀린 것은 그냥 무덤덤하다. 프랑스에는 “딸 시집 보낼 때 혼수는 못해주어도 모국어 문법만은 잘 가르쳐 보내라”는 격언이 있는데, 한국은 “영어 잘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혼수”라 할 정도다.

훈민정음 반포 시절에도 언문이니 안글이나 반절이니 구박받던 한글은 일제 때 모진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일제가 망하기 10년 전부터 국내에서는 독서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잠자는 호랑이(미국)의 코털을 잡아당길 때부터 국내 지식인들은 ‘일본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인들은 패배주의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일제가 “조선놈과 명태는 두들겨야 부드러워진다”란 소리를 공공연히 했고, 고대사 책을 다 불태워 없애는 등 역사도 왜곡하고, 민족정기 말살정책을 쉴 새 없이 편 탓이었다.

이 독소(毒素)를 제거하려면 ‘독서운동’으로 민족정기를 다시 회복시키는 길 밖에 없다 해서 전국적으로 독서회가 조직됐다. 35년대의 ‘중앙5인독서회’, 제주도 ‘서귀리 독서회’, 소설가 박영준의 독서운동, 이원수 최순애 부부 독서운동, 춘천농업학교 독서회 등이 역사에 기록돼 있는데, 그 회원들은 일경에 체포돼 모진 고문 후 재판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이 없는 독서회도 전국 방방곡곡에 있었다.

홍난파가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의 작사가 이원수는 독서회사건으로 1년 징역형을 받았고, 아내 최순애는 박태준이 곡을 붙인 ‘오빠생각’의 작사가인데, 이원수에게 시집가는 바람에 남편 옥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문학을 접었다. 박영준은 5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제는 이 독서회 운동을 독립운동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사실 독서회는 당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루소의 ‘에밀’ 과 ‘사회계약론’ 등 계몽주의 서적과 우리 고대소설 ‘홍길동전’ ‘심청전’ ‘춘향전’, 그리고 신소설 ‘자유종’ ‘혈의 루’ 등을 읽었다. 독립운동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니, 고문만 죽도록 받고, 대부분 풀려났지만, 독서운동은 힘을 잃어갔다.

그 무렵 경주에도 독서운동을 이끈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최햇빛 할아버지였다. 그는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 1910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면서 일본 국어교사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한국어가 일본어보다 우수한데, 왜 일본어를 가르치느냐”고 대드니, 무사히 졸업하기는 틀린 일이었다. 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일본으로 방황하다가 25세 되던 해에 경주로 돌아왔다. 그는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을 사표로 삼았다. 비행기를 ‘날틀’, 이화여대를 ‘배꽃계집큰배움집’이라 하자는 말에 반했다.

그는 5~6년 간 경주군청 공무원을 하다가, 무성영화(無聲映畵)가 지역에 들어온 것을 보고 바로 변사(辯士)가 되었다. 당시 포항에 영화관이 처음 생겼고, 변사가 되겠다고 자원하자 바로 채용됐다. 그는 타고난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그 무렵의 영화필름은 질이 나빠서 중간에서 끊어지는 일이 잦았다. 그 필름을 잇는 시간이 상당했는데, 그는 바로 이 틈을 노렸다. 관객들이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에 그는 한글홍보를 시작했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것은 바로 한글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글과 말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우수한 문자를 가진 우리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계몽연설은 영사기가 다시 돌 때까지 이어졌다.

몇 년간의 변사생활을 마치고 그는 전국을 무대로 한글부흥운동을 시작했다. 한번은 서울대학교를 찾아가 다짜고짜 국어교수 한 사람을 붙잡고는 “국어 사랑 강의 한 시간만 하게 해달라” 졸랐고, 그 교수는 선선히 “한 시간만 하라” 허락했다. 강의는 2시간이나 이어졌고, 학생들은 열광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전국 각 대학을 돌며 강의를 했다. 누가 여비를 보태주는 것도 아니어서, 구멍가게도 하고 양조장 술배달도 하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한글물결운동’을 벌였다. 최햇빛 할아버지는 2000년 10월 93세로 세상을 버렸다. 그래서 10월이 되면 생각나는 한글독서운동가이다.

근래에 들어 새로운 형식의 독서운동이 벌어진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초등학교부터 고교 졸업까지 12년 간 인문학 권장도서 100권 읽히기를 실천할 것이라 한다. 일제때는 민족정신 계몽독서였는데, 지금은 ‘인간이 되기 위한 독서’가 됐다. 미국 시카고대학은 2류학교였으나 ‘인문 고전 100권 마스터운동’ 덕에 1류 대학이 됐다. 양심과 윤리를 내팽개친 국회의원들이 뻔뻔한 얼굴로 국정감사를 하는 꼴을 보면, ‘인간학’ 독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국민적 과제란 생각이 든다.

서동훈 논설실장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4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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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지금 제주도는 제주사투리 지키기 운동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말지킴이가 많아야 나라가 건강하겠지요.. 한표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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