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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6월 20일
↑↑ 권 은 민
변호사
ⓒ 서라벌신문
최근 런던에 다녀왔다. 해외여행이 흔한 일이라지만 그래도 유럽은 먼 곳이었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처음 가본 도시였다.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 여왕이 있는 나라, 한때 대영제국이란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 그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와는 얼마나 다를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며칠 동안 낮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고, 저녁에는 시내 음식점에서 현지음식을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여러 곳을 다녔지만 불편함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순간, ‘왜 그런가?’ 자문해 보았다. 현지 사정에 낯선 여행자라면 당연히 불편할 터인데, 가끔은 사람에 치이기도 하고, 더러는 물건을 사면서 바가지를 쓰기도 할 터인데, 왜 여긴 그런 일이 없었지?
여행 시작부터 영국은 다른 곳과 조금 달랐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영국항공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나는 일행과 떨어져 맨 뒤편에 앉았다. 그런 상태로 10시간 이상 비행을 했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빈 좌석이 많은 비행기에 타고서 다리를 뻗고 가는 것만큼이나 편안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공공질서와 배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만난 영국 사람들은 눈만 마주쳐도, 잠시 스쳐 지나기만 해도 인사를 한다. ‘고맙다’고, ‘천만에요’라고, ‘당신 먼저 지나가세요’라고, 그렇게 인사를 해 댔다. 처음에는 잦은 인사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편안해졌다. 그들에겐 그런 배려가 몸에 밴 듯 보였다. 런던 도심을 다닐 때도,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이 북적거릴 때도 그랬다. 길을 묻거나 무엇을 도와달라고 주변 사람에게 물으면 웃는 낯으로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저 손을 들어 저쪽이라고 해도 될 것을 말로 자세히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배려심 덕분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런던 사람들 대부분이 질서를 잘 지키고, 뒷사람이 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고, 좁은 복도에서는 서로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저절로 그들을 따라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시간손실도 없고, 나 혼자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시내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지 못했다. 큰길에는 이층버스와 자전거가 보행인들과 서로 얽혀 다녔지만 고함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상 찌푸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는데, 교통카드의 잔액이 부족하다는 표시가 떴다. 자동판매기에 카드를 대고 금액을 입력하고 신용카드로 결제까지 마쳤다. 그런데도 잔액이 부족하다고 다시 삐삐 소리가 났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역무원에게 여행객인데 카드 충전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따라온 역무원은 처음부터 하나씩 충전과정을 도와주었다. 카드결제가 다 되었다는 표시가 난 후에 다시 한번 교통카드를 기계에 접촉시키는 마지막 단계를 놓쳤던 것이다.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교통카드 사용요령에 대해 한참 설명을 더 해 주었다. 여행객에게 설명해주는 것이 자신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러운 장면도 있었다.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조각 앞에서, 내셔널 갤러리의 인상파 화가 모네의 그림 앞에서 만났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다. 초등학생쯤의 10여 명의 아이들이 마룻바닥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어떤 어린이는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입장료가 무료인 미술관에서 명작 그림을 직접 보면서 그림공부를 하는 아이들, 저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어른이 될까? 부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고대 유물의 대부분이 약탈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 유물을 잘 보존하고 세계인에게 무료로 관람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현 시대 영국의 힘이었다.
날이 맑을 때는 시내 공원을 걸었다. 넓은 평지에 플라타너스를 비롯한 키 큰 나무가 제 성질대로 마음껏 자라고, 그 주변은 풀밭, 중간에 오솔길이 있고, 중간 중간 나무의자가 있었다. 연못에는 백조와 오리가, 숲에는 다람쥐가 많았다.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나면 산책하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걷고, 더러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 속에 섞여 있다 보니 나도 저절로 그들의 속도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며칠 머무는 여행객마저도 도시의 흐름에 젖어들었다.
장래에 유행할 여행패턴은 ‘특정 도시에서 한 달 머물기’와 같은 장기체류방식이라 한다. 누군가 내게 런던여행에 대해 묻는다면, 언젠가 한 달쯤 머물고 싶다고, 우리나라에 폭염이 오는 계절이라면 더욱 그리워질 도시라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도시가 몇 개쯤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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