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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과 봄바람, 그리고 흙 내음


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3월 21일
↑↑ 최 병 섭
      수필가
ⓒ 서라벌신문
봄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오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答)을 천문학과 물리학적 이론이나 생물학과 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으로 멋없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럴 때는 대체로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말들이나 알아듣기 애매한 선문답 같은 표현들이 참 맛깔스럽다. 사람들이 몸으로 봄기운을 감지하고 마음으로 봄바람을 마셔버리면 이성은 둔해지고 감성은 섬세해져 정서적인 기운에 듬뿍 빠져든다.

『산 너 ̴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 ̴으로 오네
산 너 ̴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60년대 시골마을 집집마다 설치된 앰프에서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린 내 마음에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고, 막연하게 그 남촌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좀 더 자라 감성이 풍부했던 중•고교 시절에는 토함산, 남산, 명활산 기슭이나 보문들, 배반들, 남산들을 지향 없이 배회하며 ‘박인희’ 가수가 부른 ‘봄이 오는 길’을 흥얼거렸는데, 그 노랫말에 상당히 공감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은 찾 ̴아 온 ̴̴̴̴̴다고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 ̴네.』

중국 송나라 비구승(比丘僧) 요연(了然)은 ‘春在枝頭己十方’이라는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여기서 이 봄은 아마도 깊은 득도(得道) 경지의 관념적 의미를 품고 있고, 그 표현은 상당히 문학적이라 오랜 세월 동안 수행자와 문학인들 사이에 두루 회자(膾炙)되고 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은 찾지 못하고/ 이산저산 헤맨다고 짚신만 다 떨어졌네.
지쳐 돌아와 뜰 모퉁이에 매화를 보니/ 봄은 가지마다 이미 와 있었네』

위의 오도송과 비교한다면 조금 가벼운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봄은 여인의 옷자락에서부터 온다.’라는 말도 있는데, 봄기운 감지를 상당히 섬세하면서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봄맞이 하는 여인들의 그 춘심(春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갖 빛깔과 모양으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옷자락은 또 얼마나 감성적 연출이랴!
사람들은 계절의 흐름을 사계절로 나누었고, 특히 동양에서는 긴 세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다시 24절기로 구분했다. 한자로 ‘節期(절기)’라 적을 것 같은데, ‘節氣(절기)’로 적는다는 것을 알면 참으로 오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氣’는 기후, 자연현상, 기운, 마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 모든 생명체가 귀(耳), 눈(目), 코(鼻), 피부(皮膚), 입(口)을 통한 聲, 色, 香, 觸, 味의 오감(五感)으로 우주의 순환에 따른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춘방을 써 붙인 지가 어제 같은데, 눈이 녹아 물이 되는 ‘우수’를 넘기고, 얼음 녹고 땅 풀리는 ‘경칩’이 지나 봄은 조금 씩 워밍업을 하며 문득 우리 곁에 있다. 며칠 후 춘분이 오면 땅에서 봄기운이 완연하여 농사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봄비가 내린 지난 주 새벽, 가을걷이 하고 쌓아두었던 콩대와 마른 잎들을 모아 태우고는 삽과 곡괭이로 땅을 일구고 쇠스랑으로 흙을 잘게 부숴 고르면서 감자 심을 이랑을 만들었다. 손쉬운 경운기를 두고 미련하게 삽으로 땅을 뒤지는 나를 두고 친구들은 조롱했지만, 추운 겨울잠에서 깨어난 부드러운 흙의 촉감과 흙냄새를 듬뿍 느껴보고 싶은 나의 속내를 친구들이 어찌 알겠는가!
오늘 이른 아침 서실(書室)에 가니, 원장님이 큰 붓으로 ‘흙’이라 써서 높이 걸고 계셨다. 글씨 앞에 서서 마음을 모으니, 밝고 맑은 흙 내음 봄기운이 강하게 전해온다. 도대체 봄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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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신문 기자 / press@srbsm.co.kr입력 : 2019년 0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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